LCC는 오랫동안 가격으로 설명되는 브랜드였다. 저렴한 항공권, 단순한 서비스, 빠른 예약. 이용자는 크게 기대하지 않았고, 항공사 역시 합리적인 가격을 가장 강한 메시지로 사용했다.

하지만 저비용 항공사가 늘고 가격 차이가 줄어들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이제 이용자는 단순히 싼 항공권이 아니라, 일정이 바뀌어도 불안하지 않고 공항과 기내에서 혼란스럽지 않으며 전체 과정이 명확한 브랜드를 찾는다. 가격은 선택의 출발점일 뿐, 다시 이용하게 만드는 이유는 경험과 신뢰가 된다.

일본의 피치 항공이 넨도와 진행한 리브랜딩은 이 변화에 대한 답에 가깝다. 브랜드를 고급스럽게 포장하거나 프리미엄 항공사처럼 보이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LCC다운 가벼움과 즐거움을 유지하면서도 더 편안하고 믿을 수 있는 인상을 구축하는 프로젝트다.

피치 항공 리브랜딩 키비주얼
피치 항공 리브랜딩 키비주얼. 이미지 출처: Design+

1. 가격만으로는 부족해진 LCC

초기 LCC 시장에서는 저렴하다는 사실 자체가 브랜드였다. 서비스가 단순하고 선택지가 적더라도 가격 차이가 충분히 컸기 때문에 소비자는 이유를 묻지 않았다. 그러나 경쟁사가 많아지고 노선과 운임이 비슷해지면서 ‘왜 이 항공사를 선택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중요해졌다.

항공 서비스는 다른 소비재보다 불안 요소가 많다. 예약, 수하물, 체크인, 탑승구, 지연과 변경처럼 고객이 스스로 판단해야 하는 순간이 반복된다. 이때 브랜드가 복잡하거나 정보 체계가 불명확하면 저렴한 가격이 오히려 불안감으로 연결될 수 있다.

따라서 LCC의 리브랜딩은 단순히 로고를 바꾸는 작업이 아니다. 저렴함이 ‘낮은 품질’로 해석되지 않도록 하고, 합리적인 가격과 안정적인 경험이 함께 존재한다는 사실을 모든 접점에서 보여줘야 한다.

2. 원이 만든 새로운 인상

피치 항공은 이번 리뉴얼의 핵심 모티프로 원을 선택했다. 서로 다른 크기와 색의 원이 겹치며 사람과 사람, 장소와 장소를 연결하고, 여행자를 부드럽게 감싸는 이미지를 만든다.

원은 날카로운 방향성이 없고 어느 쪽에서도 중심을 만들 수 있다. 그래서 친근함과 포용성을 표현하기 좋다. 동시에 원이 겹치는 방식에 따라 움직임과 리듬이 생겨 여행이 주는 설렘과 예측할 수 없는 즐거움도 표현할 수 있다.

기체에 적용된 원형 패턴도 같은 역할을 한다. 정돈된 그리드보다 랜덤하게 배치된 원은 피치 항공이 가진 장난기와 가벼움을 유지한다. 신뢰를 강조한다고 해서 모든 표현을 딱딱하게 만들지 않고, 기존 브랜드의 유쾌함을 새로운 질서 안에 남겨둔 것이다.

피치 항공 원형 그래픽 시스템
크기와 색이 다른 원을 활용한 그래픽 시스템. 이미지 출처: Design+

3. 컬러가 바꾼 신뢰감

기존 피치 항공은 선명한 퍼플이 강한 브랜드였다. 한눈에 기억되지만, 공항과 기내처럼 정보가 많고 긴장도가 높은 환경에서는 자극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새로운 시스템은 기존 퍼플을 버리지 않으면서 핑크, 아이보리, 베이지 같은 부드러운 색을 확장했다. 이 색들은 브랜드를 더 따뜻하고 편안하게 만들고, 이용자의 심리적 부담을 낮춘다.

중요한 점은 단순히 파스텔 톤을 추가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넨도는 동일한 계열 안에서도 여러 톤을 설정하고, 공항 안내·앱·기내·굿즈처럼 환경에 따라 필요한 시인성과 대비를 다르게 설계했다. 감성적인 색과 기능적인 색을 분리하지 않고 하나의 운영 규칙으로 묶은 것이다.

좋은 컬러 시스템은 예쁜 조합이 아니라, 장소와 상황에 따라 정확히 작동하는 선택 기준이다.

로고는 완전히 새로 만들지 않았다. 글자 사이의 여백을 넓히고 모서리를 둥글게 다듬어 부드러운 인상을 강화했다. ‘p’ 위에는 복숭아 잎을 연상시키는 작은 아이콘을 더해 브랜드 이름과 시각 언어를 자연스럽게 연결했다.

이런 변화는 눈에 띄는 혁신보다 익숙함을 유지하는 데 목적이 있다. 항공사는 신뢰가 중요한 서비스이기 때문에, 고객이 알고 있던 브랜드를 갑자기 낯설게 만드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피치 항공은 기존 인지 자산을 유지하면서 디테일을 정리했다. 리브랜딩을 ‘이전 모습을 부정하는 일’이 아니라, 기존에 좋았던 인상을 더 분명하게 만드는 작업으로 접근한 것이다.

피치 항공 리브랜딩 굿즈
새로운 비주얼 시스템을 적용한 굿즈. 이미지 출처: Design+

5. 디자인으로 체감하는 품질

이번 프로젝트에서 가장 중요한 목표는 고객이 실제로 ‘품질이 좋아졌다’고 느끼게 만드는 것이었다. 로고나 기체만 바뀌어서는 이런 감각을 만들 수 없다. 고객이 마주치는 정보와 동선, 표현의 규칙까지 함께 정리되어야 한다.

예약 화면의 정보 순서, 공항 안내의 가독성, 기내 인쇄물의 문장 구조처럼 작은 접점이 반복되며 브랜드의 품질을 만든다. 노이즈를 줄이고 표현 방식을 통일하면 이용자는 더 적게 고민하고 더 빠르게 행동할 수 있다.

결국 신뢰는 거대한 캠페인보다 이해하기 쉬운 경험에서 생긴다. 질문하기 전에 필요한 정보가 보이고, 다음 행동이 명확하며, 어느 접점에서도 같은 태도를 느낄 수 있을 때 브랜드는 안정적으로 기억된다.

6. 브랜드가 배울 점

피치 항공의 사례는 저가 브랜드가 반드시 저렴해 보여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가격이 낮아도 경험은 정돈될 수 있고, 표현은 친절할 수 있으며, 브랜드는 충분히 신뢰를 줄 수 있다.

또한 신뢰를 만든다는 이유로 브랜드의 개성과 즐거움을 없앨 필요도 없다. 원형 그래픽과 밝은 색, 위트 있는 잎사귀는 기존 피치 항공의 놀이성을 이어간다. 달라진 것은 개성이 아니라 그것을 사용하는 방식과 규칙이다.

리브랜딩을 준비하는 브랜드라면 먼저 다음을 점검해야 한다. 고객이 불안해하는 순간은 어디인지, 정보가 복잡해지는 접점은 무엇인지, 기존 자산 중 반드시 지켜야 할 인상은 무엇인지, 그리고 새로운 디자인이 운영 과정에서 일관되게 반복될 수 있는지다.

브랜드의 품질은 좋은 로고 하나로 증명되지 않는다. 고객이 만나는 모든 순간이 조금 더 이해하기 쉽고 편안해질 때, 디자인은 비로소 가격을 넘어 선택의 이유가 된다.

Design+의 피치 항공 리브랜딩 기사를 바탕으로 WAVELAB이 브랜드 경험과 운영 시스템의 관점에서 재해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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