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브랜드가 특정 지역을 위한 한정 프로젝트를 만들 때 가장 흔한 방식은 지역을 상징하는 색이나 문양을 제품 표면에 더하는 것이다. 빠르게 알아볼 수 있고 설명하기도 쉽지만, 잘못하면 문화적 요소가 장식으로만 소비된다. 페라리의 12칠린드리 테일러메이드 프로젝트는 이 익숙한 방식을 피했다. 한국의 전통과 동시대 예술을 자동차의 소재, 구조, 빛과 소리까지 연결하며 로컬 문화를 제작 공정 자체로 번역했다.

이 프로젝트에는 정다혜, 김현희, 이태현, 그레이코드와 지인까지 네 팀의 한국 작가가 참여했다. 서로 다른 작업 언어는 하나의 차체 안에서 충돌하지 않고 역할을 나눴다. 말총 공예는 대시보드와 패턴으로, 반투명 조형은 엠블럼과 오브제로, 백색 옻칠은 세부 부품의 물성으로, 사운드 아트는 차체 리버리로 옮겨졌다. 결과적으로 자동차는 한국적 요소를 모은 전시장이 아니라 서로 다른 예술 언어를 통합한 하나의 시스템이 되었다.

페라리 12칠린드리 테일러메이드 윤슬 프로젝트

1. 로컬 문화를 장식이 아니라 제작 언어로 받아들였다

지역성을 보여주는 디자인에서 가장 어려운 지점은 ‘무엇을 넣을 것인가’보다 ‘어떻게 제품의 원리와 연결할 것인가’다. 전통 문양을 차체에 인쇄하는 것은 간단하지만, 그 문양이 자동차의 기능이나 사용 경험과 어떤 관계를 갖는지는 설명하기 어렵다. 반면 이번 프로젝트는 작가의 재료와 방식이 실제 부품과 공간에 들어가도록 설계했다.

이 접근은 협업의 주도권을 단순한 이미지 제공에서 공동 제작으로 확장한다. 작가는 완성된 차에 그래픽을 더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동차를 구성하는 재료와 표면, 빛과 움직임을 함께 설계하는 파트너가 된다. 브랜드 입장에서도 지역 문화를 차용하는 것이 아니라 해당 문화의 제작 방식과 사고방식을 배우게 된다.

진정한 로컬라이제이션은 지역의 상징을 붙이는 일이 아니라, 그 지역의 제작 언어가 제품을 바꾸도록 허용하는 일이다.
페라리 12칠린드리 테일러메이드의 한국적 디테일

2. 말총 공예는 대시보드를 넘어 빛과 그림자의 경험이 되었다

정다혜 작가의 말총 공예는 자동차 실내에 작품 한 점을 놓는 수준에 머물지 않았다. 실제 공예 작품이 대시보드에 탑재되고, 작가의 시그니처 패턴은 시트와 바닥재, 글라스 루프로 확장됐다. 하나의 공예 언어가 서로 다른 소재와 제작 방식으로 변주되며 실내 전체를 연결한 것이다.

특히 글라스 루프에 적용된 패턴은 기능적인 표면을 감각적 장치로 바꾼다. 빛이 들어올 때 말총 직조의 그림자가 실내에 드리워지며, 운전자는 공예를 정면에서 감상하는 대신 공간 안에서 경험한다. 움직이는 자동차와 변화하는 빛 속에서 공예의 구조가 계속 새롭게 보이도록 만든다.

브랜드 관점에서 이 방식은 하나의 핵심 자산을 여러 접점으로 확장하는 좋은 사례다. 시각 패턴을 반복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소재와 투과성, 표면의 촉감과 그림자까지 같은 이야기를 전달하도록 설계했다.

말총 공예 패턴이 적용된 페라리 실내

3. 반투명 소재는 익숙한 브랜드 상징을 낯설게 다시 보게 한다

김현희 작가는 반투명 소재를 통해 페라리의 가장 익숙한 상징을 다시 해석했다. 스쿠데리아 페라리 쉴드와 휠 캡, 레터링 엠블럼과 프랜싱 호스 로고는 형태를 바꾸지 않으면서도 물성이 달라졌다. 이는 브랜드 자산을 훼손하지 않고 새롭게 보이게 만드는 정교한 전략이다.

오랜 역사를 가진 브랜드일수록 상징을 완전히 바꾸기 어렵다. 하지만 소재와 투명도, 빛을 받는 방식은 동일한 형태에 새로운 감정을 부여할 수 있다. 반투명 표면은 로고를 단단한 금속 오브제에서 빛을 품는 조형으로 바꾸고, 전통 규방 가구를 연상시키는 함과 키 오브제는 자동차 소유 경험을 의식적인 장면으로 확장한다.

이 프로젝트는 리브랜딩이 반드시 로고 재설계일 필요는 없다는 점도 보여준다. 핵심 형태를 유지하면서 물성과 사용 맥락을 바꾸면, 브랜드의 역사와 새로움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다.

반투명 소재로 재해석된 페라리 엠블럼과 오브제

4. 백색 옻칠은 전통을 색이 아니라 표면의 깊이로 전달한다

이태현 작가의 백색 옻칠은 프로젝트 전체를 관통하는 흰색의 기준을 만들었다. 옻칠은 흔히 짙고 깊은 색으로 기억되지만, 백색 옻칠은 익숙한 전통 소재를 예상 밖의 방식으로 보여준다. 화이트 브레이크 캘리퍼와 시프트 패들 같은 부품에 적용되면서 공예적 표면은 고성능 자동차의 기계적 디테일과 만나게 된다.

전통을 보여주기 위해 복잡한 문양을 사용하지 않고, 색의 절제와 표면의 깊이만으로 공예의 시간성과 수작업의 감각을 전달했다. 자동차의 정밀한 산업 생산과 옻칠의 반복적인 수작업은 서로 반대처럼 보이지만, 높은 완성도를 위해 시간이 축적된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백색 옻칠과 화이트 디테일이 적용된 페라리

5. 보이지 않는 V12 사운드를 차체의 패턴으로 바꿨다

그레이코드와 지인은 페라리의 V12 엔진 사운드를 악보 형태의 시각 패턴으로 변환했다. 자동차 브랜드에서 엔진음은 제품의 성능을 넘어 정체성을 구성하는 핵심 자산이다. 그러나 소리는 순간적으로 사라지기 때문에 정지된 제품 표면에서는 직접 보여주기 어렵다.

사운드를 리버리로 전환한 방식은 브랜드의 비물질적 자산을 시각적 언어로 바꾸는 과정이다. 소리의 구조와 리듬을 분석하고 차체의 곡면과 움직임에 맞춰 패턴으로 재구성함으로써, 페라리의 기술적 정체성과 작가의 음악적 언어를 동시에 담았다.

브랜드가 가진 경험 자산을 다른 감각으로 번역하면 새로운 접점이 생긴다. 향을 색으로, 움직임을 타이포그래피로, 소리를 패턴으로 바꾸는 방식은 기존 자산을 반복하지 않고도 일관된 확장을 가능하게 한다.

V12 엔진 사운드를 시각화한 페라리 리버리

6. 윤슬 컬러는 한국의 과거와 현재를 하나의 표면에 묶는다

차량 전체를 감싸는 윤슬 페인트는 프로젝트의 서로 다른 요소를 하나로 묶는 중심 장치다. 고려청자의 녹색 스펙트럼, 서울의 네온 불빛, K-팝과 전자음악의 리듬은 시대와 장르가 다르지만 빛에 따라 변주되는 하나의 컬러로 연결된다.

빛의 각도에 따라 녹색에서 보라색과 푸른빛으로 달라지는 표면은 순우리말 윤슬이 가진 이미지를 직접적인 그림 없이 전달한다. 물결이나 햇빛을 그리지 않고도 변화하는 색 자체가 반짝이는 수면의 경험을 만든다. 이는 지역성을 설명적인 그래픽보다 감각적인 현상으로 구현한 사례다.

좋은 컬러 전략은 단순한 대표색 선정이 아니다. 브랜드가 어떤 장면과 기억을 불러오고 싶은지, 공간과 조명, 움직임에 따라 어떻게 달라질지를 함께 설계해야 한다.

7. 글로벌 브랜드가 지역 문화를 다룰 때 배울 수 있는 점

첫째, 지역 문화를 하나의 대표 이미지로 단순화하지 않아야 한다. 한국의 미를 하나의 문양이나 색으로 정의하는 대신, 서로 다른 세대와 매체를 다루는 작가들이 각자의 언어로 참여하도록 했다. 그 결과 프로젝트는 단일한 전통 이미지가 아니라 한국 문화의 다층성을 보여준다.

둘째, 협업자의 작업이 제품의 핵심 구조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작가의 결과물을 캠페인 이미지로만 사용하면 협업은 일시적인 홍보가 된다. 반면 대시보드, 시트, 엠블럼, 브레이크 캘리퍼와 차체 도장처럼 제품의 실제 구성 요소가 바뀌면 협업은 브랜드의 제작 역량으로 남는다.

셋째, 기존 브랜드 자산과 지역 문화 사이의 공통점을 찾아야 한다. 페라리의 장인정신과 한국 공예의 수작업, V12 사운드와 사운드 아트, 고성능 소재와 동시대 공예의 실험성은 서로 연결될 이유가 있었다.

마지막으로 지역성을 과거에만 머물게 하지 않아야 한다. 고려청자와 옻칠, 말총 공예는 서울의 네온과 전자음악, 신소재와 자동차 기술과 함께 배치됐다. 전통과 현대를 대비시키지 않고 하나의 현재형 문화로 다룬 것이 이 프로젝트의 가장 중요한 성과다.

이 글은 Design+의 「페라리에 담긴 ‘윤슬’ 단 하나의 12칠린드리」와 페라리 제공 자료를 바탕으로 AESOST의 관점에서 재구성한 디자인 분석입니다. 프로젝트 이미지와 관련 권리는 Ferrari, 참여 작가, 원문 게시처 및 해당 권리자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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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ESOST VIEW

문화적 차별화는 상징을 붙이는 일이 아니라 제작 방식이 제품을 바꾸게 하는 일입니다.

좋은 협업은 서로의 이미지를 빌리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브랜드의 기술과 작가의 언어가 실제 구조와 소재 안에서 만나야 새로운 결과가 만들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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