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가티는 자동차를 단순한 이동 수단보다 하나의 조형 작품에 가깝게 다뤄왔다. 극단적인 성능을 구현하면서도 표면의 곡률, 재료의 촉감, 수작업의 흔적을 통해 기술적 대상에 감정과 서사를 부여한다.

고객 맞춤형 프로그램 ‘쉬르 메쥐르(Sur Mesure)’를 통해 공개한 W16 미스트랄 ‘블랑 에테르넬’은 이 철학을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부가티의 디지털 설계 기술과 베를린 왕립 도자기 공방 KPM의 전통 공예를 결합해, 로드스터의 차체를 순백의 도자기처럼 재해석했다.

부가티 W16 미스트랄 블랑 에테르넬 전면 이미지

1. 자동차라는 예술 작품

블랑 에테르넬의 인상은 흰 차체 위에 흐르는 가느다란 검은 선에서 시작된다. 선은 자동차의 외형을 장식하기 위한 무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미스트랄을 설계할 때 사용한 디지털 서피스의 구조를 시각화한 것이다.

보통 완성된 자동차에서는 사라지는 설계 과정의 흔적을 오히려 외부로 꺼내 보여줌으로써, 기술적 구조가 곧 장식이 된다. 완성품 뒤에 숨겨졌던 과정이 작품의 표면으로 이동한 셈이다.

2. 15년 만에 이어진 협업

부가티와 KPM 베를린의 관계는 15년 전 베이론 그랜드 스포츠 ‘로르 블랑(L’Or Blanc)’에서 시작됐다. 당시 프로젝트는 이탈리아 디자이너 엔초 마리가 KPM을 위해 디자인한 흰 도자기 화병과 푸른 선에서 영감을 받았다.

이번 작업은 과거의 도안을 그대로 반복하지 않는다. 푸른 붓질 대신 검은 디지털 패치 라인을 사용해, 부가티의 설계 방식이 아날로그 모델링에서 정교한 디지털 프로세스로 이동한 변화를 드러낸다. 전통을 복제하기보다 새로운 제작 언어로 번역한 것이다.

디지털 설계선이 그려진 부가티 W16 미스트랄 측면

3. 디지털 설계선을 드러내다

W16 미스트랄은 점토 모형 없이 디지털 환경에서 설계됐다. 복잡한 곡면은 NURBS라 불리는 수학적 서피스 단위의 네트워크로 구성되며, 각각의 면이 이어져 하나의 유려한 차체가 된다.

블랑 에테르넬은 이 보이지 않는 패치 구조를 검은 선으로 드러냈다. 먼저 차체 전체를 순백색으로 마감한 뒤 표면을 정리하고, 장인이 테이프를 손으로 붙여 모든 선의 위치를 잡는다. 이후 주변을 마스킹하고 선이 들어갈 통로만 노출해 검은색을 분사한다. 출발점은 디지털이지만 완성은 철저히 사람의 감각에 의존한다.

첨단 설계와 전통 공예는 서로 반대되는 방식이 아니라, 하나의 완성도를 만들기 위한 서로 다른 단계가 될 수 있다.

4. 실제 도자기를 자동차에 쓰는 법

도자기의 이미지를 페인트로 모방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실제 KPM 도자기 부품도 차체 곳곳에 적용했다. EB 엠블럼, 연료와 오일 캡, 엔진 커버의 인레이에는 순백의 도자기가 사용됐으며 KPM의 왕실 홀 문양도 더해졌다.

도자기는 가마에서 구울 때 원재료 상태보다 약 17% 수축한다. 자동차 부품처럼 정밀한 치수를 요구하는 대상에 적용하려면 소성 후의 크기를 역산해 처음부터 더 크게 설계해야 한다. 공예 재료의 불확실성을 산업 설계의 정확성 안에 수용한 과정이다.

도자기 디테일과 검은 선이 적용된 블랑 에테르넬

5. 손으로 만지는 공예

외부의 그래픽은 실내의 흰 가죽 위에도 이어진다. 가죽 조각을 준비하고 선 패턴을 손으로 마스킹한 뒤 검은색을 직접 칠해, 차체와 같은 대비를 만든다.

도자기는 장식용 인서트에 머물지 않는다. 스피커 커버, 무릎 받침, 기어 시프터 셸, 센터 콘솔 팔걸이, 창문 버튼 등 사용자가 직접 만지는 요소에 적용됐다. 보기 위한 재료를 사용하는 재료로 전환하며 공예를 경험의 일부로 만든다.

블랑 에테르넬의 선 패턴과 도자기 인테리어 디테일

6. 럭셔리가 배울 수 있는 것

블랑 에테르넬이 보여주는 럭셔리는 비싼 재료를 많이 사용하는 데 있지 않다. 디지털 모델의 선, 도자기의 수축, 장인의 마스킹과 도색처럼 서로 다른 제작 논리가 하나의 시각 언어로 연결되는 데 있다.

브랜드가 공예와 협업할 때도 전통적인 패턴을 표면에 붙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재료가 가진 물성과 제작 방식이 제품의 구조와 사용 경험에 실제로 개입해야 한다. 이 프로젝트에서 도자기는 영감의 이미지이자 기능 부품이며, 과거의 유산과 디지털 시대를 연결하는 매개체다.

W16 엔진 시대의 마지막 로드스터라는 상징성도 이 디자인을 더 깊게 만든다. ‘영원한 흰색’을 뜻하는 이름처럼 블랑 에테르넬은 한 시대의 기술을 공예의 언어로 기록한 움직이는 아카이브에 가깝다.

참고: 월간 디자인, Bugatti Newsro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