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사랑받아 온 디자인을 새롭게 만드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낡았기 때문에 바꾸는 것이 아니라 이미 너무 잘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형태와 비례, 기능과 사용 경험이 완성된 제품에 무언가를 더하면 개선이 아니라 훼손처럼 보일 수 있다.

브라운의 제품은 이런 어려움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다. 단순한 형태, 정확한 정보 위계, 절제된 색, 기능을 방해하지 않는 디테일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현대적이다. 그래서 브라운과의 협업은 새로운 디자인을 만드는 일보다 기존 철학을 얼마나 정확히 이해하는가에서 시작한다.

일본의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빔스는 브라운의 시계 두 종을 선택해 이 질문에 답했다. 바꾼 것은 많지 않다. 그러나 컬러를 어디에, 얼마나, 어떤 의미로 사용할지 정교하게 조절하면서 익숙한 제품에 새로운 리듬을 만들었다.

브라운과 빔스 협업 시계
브라운 × 빔스 협업 제품. 이미지 출처: Design+

1. 완성형 디자인일수록 협업은 더 어렵다

협업은 보통 두 브랜드의 개성을 적극적으로 섞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로고를 크게 배치하고 대표 컬러를 전면에 드러내며, 한눈에 특별판이라는 사실을 알린다. 그러나 브라운처럼 상징성이 강한 디자인에 같은 방식을 적용하면 제품이 가진 긴장감과 균형이 쉽게 무너질 수 있다.

브라운의 시계는 장식보다 정보 전달이 우선이다. 숫자의 크기, 눈금의 간격, 시침과 분침의 대비, 버튼의 위치가 모두 시간을 더 빠르고 정확하게 읽도록 설계되어 있다. 새로운 요소는 이 질서를 방해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작동해야 한다.

따라서 이번 협업의 핵심은 얼마나 많이 바꾸었는지가 아니라, 어디까지 바꾸지 않았는가에 있다. 빔스는 제품의 구조와 비례를 유지하고 컬러라는 제한된 도구만 사용했다.

2. 새로움은 존중에서 시작한다

빔스가 선택한 기준은 브라운의 철학인 ‘Less, but better’였다. 적게 더하되, 그 변화가 제품을 더 명확하고 즐겁게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다.

이 접근은 협업을 자기표현의 기회로만 보지 않는다. 상대 브랜드가 오랫동안 쌓아온 자산을 먼저 이해하고, 그 안에서 자신의 역할을 찾는다. 빔스는 브라운을 빔스답게 바꾸려 하지 않고, 브라운의 세계 안에서 빔스다운 온도를 추가했다.

좋은 협업은 두 브랜드의 목소리를 동시에 크게 만드는 일이 아니라, 서로의 장점을 더 정확히 들리게 만드는 일이다.

3. BC02X, 기능의 색 위에 빔스의 오렌지를 더하다

알람 시계 BC02X에는 시침·분침·초침에 레드, 그린, 옐로 컬러가 적용됐다. 이 색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서로 다른 기능을 빠르게 구분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브라운이 오래전부터 사용해온 기능적 컬러 언어를 이어받은 선택이다.

빔스는 여기에 자신의 상징색인 오렌지를 더했다. 조명 버튼, 스누즈 버튼, 알람 시침처럼 사용자가 직접 조작하거나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부분에 오렌지가 배치된다. 브랜드 컬러를 넓은 면적에 칠하지 않고, 행동이 발생하는 지점에만 사용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빔스의 존재감은 분명하지만 제품의 정보 구조를 침범하지 않는다. 협업 컬러가 기능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능을 더 쉽게 이해하게 만든다.

브라운 BC02X 빔스 협업 알람 시계
컬러 포인트를 적용한 BC02X. 이미지 출처: Design+

4. BN0279, 작은 변화가 만드는 긴장감

브라운 최초의 기계식 손목시계 BN0279는 화이트 다이얼과 블랙 다이얼 두 가지로 구성됐다. 기본적인 형태와 절제된 색감은 그대로 유지되지만, 날짜 창에 빔스의 오렌지가 들어가며 작은 변화를 만든다.

손목시계는 알람 시계보다 작은 화면 안에 더 많은 정보가 압축되어 있다. 이 때문에 색을 과하게 사용하면 다이얼의 균형이 쉽게 깨진다. 빔스는 가장 작은 영역 중 하나인 날짜 창을 선택했고, 그 결과 시선을 끌면서도 전체 인상을 해치지 않는 포인트가 만들어졌다.

화이트 다이얼에서는 오렌지가 경쾌한 리듬을 만들고, 블랙 다이얼에서는 강한 대비로 기능적인 인상을 준다. 같은 색이지만 배경에 따라 서로 다른 분위기로 작동한다.

브라운 BN0279 빔스 협업 손목시계
날짜 창에 오렌지 포인트를 더한 BN0279. 이미지 출처: Design+

5. 빔스는 왜 브라운을 선택했을까

빔스는 50주년을 맞아 다양한 브랜드와 협업을 이어가고 있다. 그중 브라운은 유행과 거리가 멀면서도 세대를 넘어 계속 선택받는 브랜드다. 빔스가 오랫동안 해온 일 역시 좋은 물건을 자신의 시선으로 다시 발견하고 새로운 고객에게 제안하는 것이었다.

이번 협업에서 빔스는 디자이너라기보다 큐레이터에 가깝다. 제품을 새로 정의하기보다 이미 존재하는 가치가 지금의 소비자에게 다시 보이도록 조정했다. 컬러는 그 과정에서 가장 효과적인 필터가 된다.

브라운의 아카이브에 원래 존재했을 법한 익숙함과, 빔스가 가진 유쾌한 감각 사이의 균형이 이 협업의 완성도를 만든다.

6. 클래식 브랜드와 협업할 때 배울 점

첫째, 협업의 목적을 시각적 화제성으로만 설정하지 않아야 한다. 기존 제품이 왜 오래 사랑받았는지 이해한 뒤, 그 가치를 더 잘 보이게 만드는 변화가 필요하다.

둘째, 브랜드 컬러는 넓게 사용할수록 강해지는 것이 아니다. 기능과 행동이 발생하는 지점에 정확히 배치할 때 더 선명한 의미를 가진다.

셋째, 새로움은 형태를 크게 바꾸는 것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작은 색 변화와 디테일 조정만으로도 제품의 인상과 세대적 감각을 충분히 바꿀 수 있다.

브라운 × 빔스 협업은 완성된 클래식을 존중하면서도 새로운 해석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이 더했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남기고 어디에 개입했는가다.

Design+에 소개된 브라운 × 빔스 협업을 바탕으로 WAVELAB의 관점에서 재구성한 매거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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